2025/06/12

На восьми фронтах (1982) 에서 발췌: "우리는 틀림없이 베를린에 갈 것입니다! "



П.И.Трояновский라는 기자가 쓴 대조국전쟁 회고록 На восьми фронтах (여덟 전선에서)(1982) 에서 발췌.


1941년 10월 30일. 나는 다시 모스크바에 있다. 어제 아침에도 툴라에서 소환되어 K.K. 로코솝스키 장군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이 기사는 소련 정보국의 요청으로 해외 언론에 배포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었다.

[...]  

... 10월 29일 정오 무렵, 나와 운전사 미하일 부라코프는 이미 모스크바 «프라브다» 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크라스나야 즈베즈다 (붉은 별)» 편집부가 다시 이전해 온 곳이었다. 여기서 D.I. 오르텐베르크 편집장은 나에게 사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를 작성하기 위한 기사 자료와 함께 제16군 사령부에서 붉은 군대의 투지에 관한 몇 가지 사례를 추가로 수집할 것을 지시했다. 편집장은 덧붙여, 내가 K.K. 로코솝스키를 설득해 사설에 직접 서명하게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경,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소콜» 지하철역을 지나 볼로콜람스크 도로로 진입했다. 이 도로는 툴라 도로보다 훨씬 분주했고 훨씬 더 위험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파시스트의 메서슈미트 전투기와 융커 폭격기들이 하늘에 계속 나타났다. 우리는 두세 번 차에서 뛰어내려 젖은 도랑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도로가 적군 항공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약 한 시간 후 주 도로에서 벗어나 숲속 작은 마을에서 군 사령부를 찾았다. 군 사령관은 자리에 없었다. 그는 전선 부대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로코솝스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사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라는 임무를 받은 것은 사령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나는 어느 집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고, 곧 군사위원회 위원인 사단 정치장교 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로바체프와 참모장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말리닌 소장이 들어왔다. 둘 다 매우 지쳐 보였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 볼로콜람스크 방향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 제16군의 전력은 분통 터질 정도로 약했다. 이 부대에는 I.V. 판필로프 소장이 지휘하는 제316소총사단, S.I. 믈라덴체프 대령이 지휘하는 사관생도 연대, L.M. 도바토르 소장의 기병, 몇 개의 포병 연대 및 특수 부대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K.K. 로코솝스키 장군과 그의 참모진은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 볼로콜람스크 도로에서 12~15km 떨어진 지역이 가장 위협받는 구간임을 확인했다. 바로 그곳에 I.V. 판필로프 소장의 사단이 방어선을 구축했다. 당연히 군 사령관의 주요 관심도 이곳에 쏠려 있었다.  

[...] 

K.K. 로코솝스키는 꽤 늦게 사령부로 돌아왔다. 그는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나와의 대화를 계속 거부하며 기사는 장군에 대해 쓰는 게 아니라 군대에 있는 수천 명의 병사들에 대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단 정치장교 로바체프는 결국 그를 설득해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의 요청을 들어주게 했다.  

— 알겠습니다, —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가 마침내 말했다. — 필요하다니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사설은 쓰지도 서명하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군대에 명령합니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말라. 이것은 군 사령관의 명령입니다. 신문에서 이를 호소하는 건 다른 필자들—전투에서 공을 세운 평범한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결론이 났다. 로코솝스키는 자신의 약력을 간단히 말해주었다. 전형적인 소련 지휘관의 삶이었다. 나는 나중에 기사를 쓰기 위해 빠르게 메모를 했다.

— 지금 나는 여기, 당신이 보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가 말을 마쳤다. — 우리 조국은 시련을 겪고 있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적은 여전히 강하지만, 6월 22일 전쟁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릅니다. 독일-파시스트 군대의 정예들을 이미 발트 해 연안, 벨로루시, 레닌그라드 근교, 스몰렌스크, 키이우와 오데사, 브랸스크와 모스크바 외곽에서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파시스트들이 여전히 개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성공은 아닙니다…  

로코솝스키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 지도가 있습니까?

나는 그에게 모스크바 지역 지도를 건넸다. 장군은 지도를 한 번 보고 돌려주며 부관을 불렀다.  

— 내 유럽 지도가 왜 여기 없지?

  

부관이 한 걸음 물러섰다. 

 

—  작전부로 가서, — 로코솝스키가 그를 제지했다. — 유럽 지도 두 장을 붙여 오게. 나와 기자 분을 위해. —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싸우려면 전망이 있어야 합니다. 가능한 전쟁의 전체 전장을 봐야 합니다. 우리 붉은 군대가 베를린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 그리고 다시 곧이어 앞서 말했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 적은 이미 전쟁을 시작할 당시의 전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습니다. 반면 우리의 전력은…

그는 말을 멈췄다. 장군은 우리가 보유 중이거나 예정된 전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A.A. 로바체프가 사설을 위한 자료가 적힌 종이를 가져왔다. 로코솝스키는 그것을 읽고 도바토르 장군의 기병군단 소속 포병 한 명의 이름을 추가로 기입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 사설은 이 사람이 써야 합니다! 그의 말은 경종처럼 울려 수백만 병사들의 심장에 다다를 것입니다!

부관이 유럽 지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장군에게 지도 귀퉁이에 베를린에 관한 그의 말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로코솝스키는 이렇게 썼다:  

««크라스나야 즈베즈다» 특파원 P.I. 트로야놉스키에게.  

모스크바 근교에서 싸우는 동안에도 우리는 반드시 베를린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베를린에 갈 것입니다!  

K. 로코솝스키. 모스크바 근교. 1941년 10월 29일»


[...]  

(1945년 4월) 

— 당신 지도를 주십시오. — 말리닌이 갑자기 다시 요청했다. 내가 건네자, 전선군 참모장은 1941년 10월 K.K. 로코솝스키가 쓴 메모 오른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베를린에 있다는 것을 본인은 이에 증명합니다! 제1벨로루시전선군 참모장 M. S. 말리닌 상장, K.K. 로코솝스키가 지휘했던 前 제16군 참모장. 베를린, 1945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