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로코솝스키: 모스크바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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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출장 동안 가브릴로프는 전선 지역의 여러 마을을 돌며 스케치를 했고, 종종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다. 한 지휘관이 두렵지 않냐고 묻자, 그는 "두렵지만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가 썰매를 타고 다음 마을로 가던 중 포격을 받으며 모든 스케치가 소실되었다. 위원회 담당자자들과의 대화에서 니콜라이 파블로비치는 포프코보 마을 점령 등 소련 병사들의 용감한 행적을 여러 차례 묘사했으며, 이러한 "구술 스케치"가 후대에 전해졌다.
가브릴로프는 또한 독일 국방군의 잔학 행위를 목격했다. 그는 이전에는 이런 소식을 "과장된 소련 선전"이라 여기며 회의적이었으나, 데도보 마을에서 본 것들은 어떤 선전보다도 적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켰다.
가브릴로프가 제작한 로코솝스키 흉상의 운명은 어땠을까? 이는 그 유명한 장군의 첫 흉상이었다. 1942년 말 또는 1943년 초, 전시 및 파노라마 관리국(DVP)이 이를 구매했다. 1944-1945년에는 한 병원에, 1947-1949년에는 중앙철도부속병원 임시 전시장에 있었다. 1953년 소련 문화부 미술작품 아카이브로 이관되었고, 1989년 DVP의 후신인 V.E. 부체티치 전연방예술공업콤비나트(VKhPK)에 넘어갔다. 1992년 VKhPK 소장품은 국립박물관전시재단 "로시조"(ГМВЦ "РОСИЗО")에 인계되었으며, 2008년 모스크바주 크라스노아르메이스크 시립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현재까지 전시 중이다.
* 가브릴로프가 제작한 로코솝스키 흉상
